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포로 학살 (문단 편집) == 현대 이전의 개념 == [[고대]]부터 [[근대]]까지 전쟁마다 상당히 많이 자행되었다. ''''수만 년의 인류 역사에서 "포로를 죽인다는 건 잔인한 행위다!"라는 시각을 갖게 된 것은 불과 수십 년도 채 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일단 성문법으로 포로를 사람답게 대해야 한다는 [[제네바 협약]]이 처음 나온 것이 1864년이며, 현재의 인권 개념이 담긴 협약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인 1949년에 나온 4차 협약인데, 물론 현대에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수두룩 하다.[* 과거 [[미군]]이 운용한 [[관타나모 만|관타나모 포로수용소]](잔혹한 테러범 뿐 아니라 민간인들도 집어 넣었는데 처우가 너무나 부실해 논란이 되었다.)나 아프리카에서 지금도 벌어지는 군벌세력 간의 내전만 봐도 알 수 있다.] 대인배의 전형이자 비 기독교인임에도 당시 중세 유럽인들에게도 인정 받았던[* [[단테]]의 [[신곡]]에도 등장하는 몇 안 되는 비 기독교인이 살라딘이다.] [[살라흐 앗 딘 유수프|살라딘]]도 [[리처드 1세]]와의 교섭이 실패하자 기독교 포로들을 학살한 적이 있고 리처드 1세도 마찬가지 였다. 양측은 상대방을 적대하면서도 이걸 명분으로 공격하지는 않았다. >[[이세환]]: 어떤 역사학자들은 현실적인 문제가 있었다고 보기도 해요. (리처드와 십자군이) 2,700명에 달하는 포로들을 먹여 살려야 했잖아요. 그런데 현실적으로 보급이 조금 개선되었다고 하지만, 몇천명의 포로를 먹여 살린다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었거든요? >[[허준(게임 캐스터)|허준]]: 그렇지만 그래도 존경받는 리처드 왕께서 밤 하나 나눠주기 아쉬워서... >[[임용한]]: [[포로]]를 안 죽여야 한다는 거는, 20세기 전쟁 때에 [[제네바 협약|간신히 말로 나왔어요]]. 말로. 우리가 [[독소전쟁]]도 다루고 [[제2차 세계 대전]] 때도 말했지만, 2차 대전 때도 [[기사도]]가 지켜진 전쟁이 몇개 없어요.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전쟁 포로를 죽이면 범죄야.", "도시를 폭격하거나 방화를 저지르면 범죄야."라고 말한 지 불과 50년이 지난 시점에서 살고 있는 거에요.''' >[[이세환]]: 지금 ([[인권]]이라는) 이런 개념이 나온 지가 50여 년밖에 안 됐어요. >[[허준(게임 캐스터)|허준]]: 죄송합니다. [[중세]]임을 잊고 있었습니다. >[[임용한]]: 아니, 중세라서가 아니고, 지금도 그렇다니까요. 지금도 [[쿠르드족]]에게 가스 뿌리고, 아프가니스탄에 독가스 뿌리고, 지금도 그런 짓을 해요. 안 하는 나라가 적어요. 지금도. >---- >'''[[토크멘터리 전쟁사]] 42부, 십자군 전쟁 4편''' [[리처드 1세]]의 포로 학살에 대해 이야기하며. 중세 이후부터 고위 포로들은 "돈을 받고 돌려보내주면 이득이잖아?"라는 개념이 자리잡히며 풀리는 경우가 많았고,[* 고위 포로들은 그 출신이 출신인지라 몸값을 낼 정도의 여력은 있는 편이었고 출신 때문에 함부로 죽이기도 뭣했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귀족 장교들은 눈먼 탄환이나 총격에 살해당하지 않는 이상 포로로 잡아뒀다가 몸값을 받고 풀어주는게 국룰이 되었는데 이 때문에 영국은 미국 독립 전쟁에서 죽을 쒔다. 미국에서는 공식적인 신분제도 없고 장교를 살려서 잡는다는 개념도 없어서 교전중 보이는 대로 죽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휘관이 죽으면 결속력이 약해지므로 그만큼 이득이다. 애초에 자기 땅에서 싸운다는 것 빼면 영국군에 비해 하나도 우월한 것이 없었으므로 정정당당하게 싸워 줄 이유따위는 없었다.] [[용병]]들의 경우에도 "[[몽키 D. 루피|너! 우리 편이 돼라!]]"며 살려주어 역으로 고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물론 전쟁터에서 붙잡힌 대다수의 포로들은 그러지 못한 경우도 많았다. 포로는 승자의 소유물이라는 관념이 있었기 때문이다. 꼭 전쟁에 대한 관념만이 아니어도 현실적으로 보급이 어려운 고대에는 아군도 먹이기 힘든 마당에 포로를 먹여살리기도 힘들고, 대인원은 반란을 일으키지 못하게 통제하기도 어려웠다. 전쟁이 한창인 마당에 포로협상을 할 수도 없고, 그냥 풀어주는건 승리를 무위로 만드는 짓일 뿐이니 결국 여건이 안되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역사학자들도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학살기록이 있는 장군들과 왕을 마냥 비판하지 않는 것이다.[*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추격'이다. 후퇴는 엄연히 전력 보존 행위이기 때문에 국제법도 도주하는 적을 추격하는 걸 금하지 않는다. 전투에서 피해도 대부분 교전중이 아닌 패주 중에 발생하므로 추격하지 말라는 건 전쟁에서 이기지 말라는 거나 다름없다. 이건 너무 당연한 거라서 정정당당한 전투를 중시한 문화권에서도 '도망가는 적을 쫓다니 비겁하다!'는 관념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사극에서 종종 범하는 오류.] 그러나 이것만 보고 과거 포로 학살이 마냥 정당했다 하는 건 굉장히 짧은 생각이다. 당장 기원전 인물인 [[항우]]는 [[신안대학살]]로 20만명의 포로를 죽여 민심을 잃고 결국 [[초한전쟁]]에서 패배했다. 항우보다 더 과거의 인물인 [[백기(전국시대)|백기]]는 진나라 시대엔 위인으로 추앙받고 제사도 지냈으나 후대로 가면 사람을 많인 죽인 죄로 벌을 받았다는 전설[* 당나라 때 어느 소가 벼락에 맞아 죽었는데 나중에 살펴보니 소에 [[백기(전국시대)|'백기']] 라고 쓰여져 있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백기가 사람을 많이 죽인 죄로 소로 태어난 것도 모자라 벼락을 맞아 다시 죽은 것으로 여겼다는 전설이다.][* 후대의 [[하안]]은 아예 '백기론'이라는 저서를 써서 백기를 비판하기도 했었다. '포로를 다 죽이면 대체 누가 항복을 하냐? 진나라가 중국 통일을 하고서도 망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라는 책을 썼을 정도니, 당시에도 도를 넘는 포로학살은 비판받아야 마땅하다는 생각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이 생겼고 결국 명장은 맞으나 위인은 아닌 학살자로 기록되었다. 다만 두 사람은 역사상에서도 손꼽히는 학살자라는 점은 감안해야 한다. 하지만 [[춘추전국시대]]와 [[초한전쟁]]은 좀 특수한 경우인데 춘추전국시대와 초한전쟁 시대의 국가들은 원래 천자국인 [[주나라]]를 섬기는 제후국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물론 [[전국시대]]가 되면 독립된 국가로 완전히 분리되지만, 춘추전국시대 국가들의 조상들은 다 주나라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관념적으로는 내전에 가까운 양상도 있었다.[* [[초나라]] 만은 다른 민족일 가능성이 높으나, 초나라도 주나라 성왕이 [[웅역]]에게 작위를 하사하여 제후국이 되었다. 이는 초나라의 날조일 가능성도 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자기들 스스로 주나라의 제후국이었음을 자처했다는 점에서 다른 국가들과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조나라]] 사람이 [[진나라]]를 보는 시각과 [[흉노]]족을 보는 시각은 전혀 달랐다. 이들 국가들 사이에는 서로 중화인이라는 관념이 있었고, 전쟁을 할때 하더라도 지킬건 지켜야 한다는 개념이 있었으며 이를 어기면 비난을 받는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중국도 이민족에게는 이런 개념이 전혀 없었다. [[곽거병]]은 흉노족 포로 다수를 참수했지만 이를 비판하는 기록은 전혀 없으며 [[당태종]]도 [[주필산 전투]]에서 말갈인 포로들을 [[생매장]]했지만 이를 두고 당태종을 비판하는 중국 기록은 하나도 없을 정도이다. 이런 점은 유럽의 기독교 국가들도 마찬가지로 중세 기독교 국가간의 전쟁에서는 포로 학살이 잘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슬람이나 몽골 같은 전혀 다른 이민족이나 다른 문화권과 전쟁을 할때는 포로 학살이 비판받지 않았으며 이는 이슬람과 몽골쪽도 마찬가지였다. 포로 학살은 포로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닌데 나와 같은 인간을 무자비하게 학살했다는 점에서 비판받는것인데 이 나와 동일한 인간이라는 개념이 어디까지인지 시대에 따라 달랐다. 20세기 이후에는 전인류는 하나라는 관점이라 어느 나라 포로를 학살하건 비난받지만 이런 개념이 생긴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윤리적인 문제 외에도, 돈 없는 하급 군인 포로라도 대개 값비싼 [[노예]]로 팔아버릴 수가 있어서, 포로를 학살하는 것을 전리품 훼손으로 여겨 제재하기도 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